2011/03/23 19:57 |
몇 몇 사람들과 모여서 이른바 '인문학'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고 있다.
사실 공부라고 하기에는 미흡하고, 그냥 같이 책읽고 수다떠는 정도. 라고 표현하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려나? ^^;
어쨌건 "집단학습"이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더 어울릴만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커리큘럼도 정해져 있는 것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계획은 없다. 다만, 철학, 역사, 경제 등에 대해서 같이 알아보자는 취지이다.
지금까지, 철학 vs 철학」,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보았고, 이제는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을 볼 차례이다. 앞에서 읽었던 책들보다는 좀 더 어렵기도 하고, 딱딱한 책이기에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번에 봤던 부분은 "서문"과, "1장 역사의 밖과 안에서"이다.
서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책들과 같이, 이 책에 담겨져 있는 대충의 내용과 강조할 지점인 듯하다.
특히, 역사가가 실재를 탐구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옹호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물론, 아직 1장까지 밖에 읽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단순히 증거에 근거한 역사적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을 구분해 내는 것을 강조하는 점은 뭔가 단순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른바 신화라고 불리는 부분에 대한 강한 거부감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 싶었다.
 

1장은 중앙·동유럽 국가의 학생들을 위해 강연했던 내용이다. 이른바 구소련의 영향을 받았던, 관계있었던 나라들의 학생들이 대상이었던 것.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책에 의하면 매우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 있는 나라를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 인종주의,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기 쉬우며, 특히 역사는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도와주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고. 그래서 역사가의 책임을 강하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예로 들었던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마음 속 깊이 남는다. 이른바 일제강점기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를 강조하면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한국의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생각. 물론 일본이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말 것. 더구나 아직도 인종주의를 내세우며(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쨌든 간만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마주하니, 앞으로의 책읽기가 기대된다.

0. 책머리에

역사학에 대한 일반적인 성찰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세 가지 주제

- 역사의 사회적, 정치적 사용과 악용,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와 (가능하다면) 세계의 재구성에 대한 관심. 특히 역사학이 사회과학 내에서 갖는 가치에 대해 논의.

- 과거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역사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 진지한 역사가라면 누구나 직면 할 수밖에 없는 중심적인 문제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유용했던 역사적 해석, 그리고 또한 내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 배경, 신념, 삶의 체험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기술했던 방식들에 관한 것.


두 주제에 대한 해명

- 역사가가 실재를 탐구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옹호한다. 역사가는 확정된 사실과 꾸민 이야기 사이를, 증거를 필요로 하고 증거에 근거한 역사적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 사이를 근본적으로, 아주 중점적으로 구분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객관적 실재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견해가 최근 몇 십 년 동안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의심하면 실증주의라고 비판받음.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를 구별하지 않으면 역사가 존립할 수 없다고 확신. 상대주의는 법정에서 쓸모가 없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쓸모가 없다.

-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접근 방식을 다루려고 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이 역사에 대한 단연 최상의 (하지만 조건부의) 안내자라는 것을 계속 깨닫게 된다.

  “역사는 사회가 본질적으로 겪는 모든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 이븐 할둔

  일관성 있는 지적 연구인 역사학은 세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었다. 누구의 저작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붙인 정치적 레테르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1. 역사의 밖과 안에서

중앙유럽과 동유럽에 관한 것

- 중앙유럽과 동유럽은 전쟁을 거치면서 침략당했고, 정복당했고, 점령당했고, 해방되었고, 다시 점령당했기에 매우 불확실한 상태에 놓인 나라들이다. 중앙유럽인과 동유럽인이 어디에 속하고,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어떤 나라에서 그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고, 그 밖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법적 지위와 삶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결정짓기도 하는 문제이다.

- 더 집단적인 성격의 또 따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중앙․동유럽의 어느 나라나 어느 지역도 스스로를 유럽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세기 중앙유럽과 동유럽의 이야기는 대체로 몇몇 모델을 차례로 모방하여 따라잡으려다 실패했던 이야기이다. 1918년 이후 새롭게 등장했던 대부분의 후계 국가들이 모델로 삼은 것은 서유럽의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였다. 1930년대에는 파시즘 모델을 시도하거나 이 모델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1945년 이후에는 볼셰비키 모델을 선택했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볼셰비키 모델은 후진적 농업 경제를 계획적 산업 혁명을 통해 현대화하려는 모델이었다. 이 체제는 1989년에서 1991년 사이에 아주 극적으로 무너지고, 지금은 의회 민주주의 정치와 극단적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 경제를 뒤쫓으려 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중앙․동유럽 국민들은 실망스러운 과거를 지닌, 아마 더 실망스러운 현재를 지닌,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지닌 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와 불안정을 탓할 누군가를 찾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민족주의나 관용을 베풀지 않는 움직임일 것 같다.


역사가의 책임

- 역사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나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 또는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있어 본질적인 구성 요소, 아마 가장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다. 과거는 현재를 정당화시킨다. 과거는 별로 기념할 가치가 없는 현재를 영광스럽게 만드는 배경을 제공한다. 역사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정치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에 책임을 져야하며, 특히 역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일을 비판해야 한다. ① 소설 줄거리를 기록된 실제에 기초해서 구성하는 최근 경향에 따라(팩션)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허구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있다. ② ‘포스트모던적’ 지적 경향이 서구의 대학에서, 특히 문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강해진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실과 허구 사이에 명확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역사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기억이나 집단적 전통이 아니라. 역사는 사람들이 성직자, 교사, 역사 집필자, 잡지 편집자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배운 것이다. 역사가가 자신의 책임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역사가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격정에서 비켜서 있어야 한다. 역사가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격정을 느낀다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한 민족 신화, 인종 신화, 그리고 다른 신화들의 형성에 저항해야만 한다.


역사가로서 마지막 당부

- 정부, 경제, 학교 등 사회의 모든 것은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돌볼 수 있다. 사회 내의 모든 것은 특별히 영리하거나 흥미롭지 않은,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성공하지 못하거나 성공하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은, 즉 실제로 결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세계는 우리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져 있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세계 속에 있지도 않다. 개인적 이익의 추구가 자신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가 아니고 계속 유지되어서도 안 될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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