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회 경향’을 다루는 것인데, 사회 경향은 넓은 의미에서 ① 사회 발전 방향에 대한 탐구 ② 우리가 사회 발전 방향과 관련하여 할 수 있을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은 위험하고 자주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또한 필요한 행동이기도 하다. 현실 세계에 대한 모든 예견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 즉 역사에 근거해서 미래를 추측하는 일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한다. 그러므로 역사가들은 자신의 분야인 역사에 관해 적절한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역사에 근거해서 미래를 추측하는 것과는) 반대로, 역사는 미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경계선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딘가에 “현재”라 고 부를 수 있는, 개념상으로는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점이 존재한다. 우리들은 역사가의 지혜를 이용하여, 현재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 속에서 간접적인 대답을 찾으려 하지만, 과거에서 모든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어쨌든 과거, 현재, 미래는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아무리 과거와 미래를 엄격하게 구분하려 하더라도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과 사회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들의 위치를 과거와 관련하여 규정한다. 더욱이 학습, 기억, 경험에 기초한 대다수의 의식적 인간 행위가 과거, 현재, 미래와 끊임없이 직면하는 방대한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사람들은 몇 가지 형태로 과거를 해석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공공정책은 물론이고 의식적인 인간 생활의 일상과정도 그러한 예측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예측은 대체로 미래가 과거와 체계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정당화된 가정하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과거도 환경과 사건을 멋대로 연결한 것은 아니다.(나름 체계적이라는 의미?) 인간 사회의 구조, 그 진행 과정과 재생산, 변화, 변형의 메커니즘 등은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제약하고, 일어날 몇몇 일들을 결정하고, 나머지 대부분에 얼마간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특정한 (명백하게 제한된) 범주의 예측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성공적인 예보와 결코 똑같지 않다. 더구나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측에 대한 논의들은 불확실성이 가장 큰 미래 부분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계절의 순환처럼 불확실성이 거의 없는 미래 부분에 집중되지 않는다.
미래를 상당한 정도까지 예견하는 일이 바람직하고, 가능하고, 심지어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것은 미래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심지어 결정되었다 할지라도) 알기 쉽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대안적 선택이나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도 않고, 예측자가 옳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예측은 어느 정도나 가능한가? 어떤 종류의 예측이 가능한가? 예측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나? 그리고 역사가들이 이 예측과 일치하는 것은 어디인가?
- 예측을 개선한다는 말에는 예측이 수정가능하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음.
그 전에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① 왜 예측 기능은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가 없는가? ② 왜 예측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천적이라고 확신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마저도 예측 기능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거나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는가? 답은 명확한데, 거의 모든 역사적 예측이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전문 역사가들은 예측을 회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일이다.
인간적 예측과 기상학적 예측은 모두 신뢰할 수 없고 불확실한 기획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한편 기상학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기후를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기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을 행동 목표로 삼는다. 개개 인간들은 아마도 비교적 드물기는 하지만,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역사적) 예보를 이용한다. 역사적 예견을 이용하여 인간들이 내리는 어떤 결정들은 크든 작든 명확하게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가 전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이러한 기대는 집단적인 인간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지식을 알기 위해 역사적 예견에 의존하려는 기대) 문제는 (예견이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예견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역사는 단절적이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함.
- 4장에서는 미래를 위해서 사람들(역사가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룸.
- 한 사람이 역사에 대해서 예측을 할 때에는 기상학과 마찬가지로 예보를 사용한다. 그러나 집단적 예견의 경우에는 달라질 수 있다. 어쨌건 그러한 예측과 인간들의 행동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역사적 예견이 전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 예견이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평이 수반된다. 그래서 역사적 예견은 기상 예측과 다르다. 또한 역사가들에게는 일기 예보처럼 정기적으로 그리고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확실한 고객층이 없다는 점에서 불리하다. 더구나 실질적으로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하는 데 주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특히 정치판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역사가들)를 둘러싸고 있다.
예언가들도 욕을 먹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불가피성을 논증하는 역사적 분석을 발전시키기 전에, 다시 말해 확실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해 아주 많이 알기 전에, 인간 역사의 특정한 목표인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특수한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에 내재된 법칙”을 통한 개개 자본가들의 착취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측(분석에 기초한 예측)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착취자를 착취하는” 계급이 될 것이라는 예측(열망에 근거한 예측)과는 다르면서 더 중요한 역사적-이론적 분석에 근거한다.
우리 모두(역사가들)는 이러한 심리적 유혹, 또는 이데올로기적 유혹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혹을 피할 수 없고, 중립적이지 않았다. 이것은 순전한 무지와 함께, 역사 예측자들의 길을 막는 주요한 장애물이다.
- 그렇다면 역사적-이론적 분석에 근거한 역사적 예측은 자연과학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역사적 예측은 두 가지 방식에서 다른 모든 예측 형태와 다르다. ① 역사가들은 다른 것들과 절대 똑같을 수 없거나 무시될 수 없는 실제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역사가들은 명백하게 복잡하고 변화하는 종합적 총체와 관련되어 있고, 역사가들의 아주 구체적이고 좁게 규정된 질문들조차 이러한 맥락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② 이론가로서 역사가들은 예견을 확증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역사가들의 예언 대부분은 검증될 수 없다. 또한 “검증될 수 있는 예측 명제로 반드시 정식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 분석의 범주를 위축시키고 본질적으로 시간 경과 속의 복잡한 변화를 연구해야 하는 역사학을 왜곡한다.
- 그렇다면 검증되지도 않고, 총체적으로만 파악하는 예견인데, 정말 역사적 예견을 하는 건가? 라는 질문에 회고적 예견을 한다고 대답함.
역사가는 회고적으로는 늘 예견을 한다. 역사가들이 예견한 미래는 현재가 되거나 더 먼 과거에 비해 더 가까운 과거가 된다. 이러한 역사가들의 방법은 ① 역사가의 예견은 회고적이기는 해도, 복잡하고 포괄적인 인간 생활의 실제, 결코 똑같지 않은 다른 것들, 그리고 실제로는 ‘다른 것들’이 아니라 사회 속의 인간 생활에 대한 서술로 완전히 추상화될 수 없는 관계들의 체계에 관한 것이다. ② 모든 역사 분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 속의 상호 작용 패턴, 변화와 전환의 경향과 메커니즘, 사회 내의 변화 방향 등을 정확하게 발견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역사가들의 노력은 ‘거의 중요하지 않은 이론 범주로 경험적 자료들을 편집하여 과거를 통계적으로 그려보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 회고적 예견 : 예견이라는 것이 미래를 내다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과정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예측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과거에서 현재를 예측한다고 생각을 하면 되는 것임.
- 모든 역사가들은 회고적 예견을 하는 것이고, 어떤 역사가들은 미래를 어느 정도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 역사가가 예견하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어떠한 구조 속에서 변화되어 왔을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다는 것.
역사를 이용한 예측은 두 가지 방법을 일반적으로 조합해서 사용한다. 하나는 일반화나 모델화를 이용해서 경향을 예측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경로 분석에 의해 실제 사건이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영국 경제의 지속적 하락에 대한 예측은 첫 번째 방법의 예이고, 대처 정부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두 번째 방법의 예이다. 러시아 혁명이나 이란 혁명 같은 어떤 것을 예언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하는 것이다.
- 1번이 내재적 규칙을 찾거나 공식을 만드는 것이라면 2번은 인과관계를 만드는 것.
- 1번이 통합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정치나 기타 다른 것도 고민)이라면 2번은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보기에 어떠한 사건이나 행동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 본다는 것.
- 결론은 그래서 2가지 모두를 고민해야 역사적 예측을 쉽게 할 수 있음.
- 회고적 역사는 반(反)사실적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공식화된 반(反)사실적 사고, 즉 ‘계량사학자’들의 반(反)사실적 사고와는 구별되어야만 한다.(반사실적 역사는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역사이다.)
간단하게나마 러시아 혁명을 검토해 보는 것은 역사의 진행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예측의 범위와 그 한계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검토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 역사상 1917년과 같이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진행 과정에 대한 상대적 분석을 통하여 예측력을 지니고 있었던 지점과 명령이나 계획을 행사함으로써 문제가 야기되는 지점 사이를 구별할 수 있다.
-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때, 그 메커니즘을 살펴보아야 하지, 겉에 드러나는 그 조건들에 대해서만 살펴보아서는 안된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혁명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발생했는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함.
어떤 면에선 사회적 경향을 예측하는 것이 사건을 예측하는 것보다 쉽다. 사회적 경향을 예측하는 것은 모든 사회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발견 자체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기 예측의 잘 알려진 결점은 그 예측이 언제 실현될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문제와 ‘언제 일어날 것인가’라는 문제는 방법론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연대기를 제쳐두면, 역사가는 사실상 사회과학에서 가장 강력하고 일반적인 예측에 필수적인 존재로 인정된다. 이러한 예측은 그 어떤 종류의 실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론 명제나 이론 모델에 근거한다. 이러한 예측은 값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인 동시에 불충분한 것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변수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확립할 수만 있다면 논증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예측은 그 자체가 너무 일반적이어서 구체적 상황을 많이 설명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불충분하고, 그러므로 그러한 예측을 이용하여 미래를 직접 미리 보려는 시도는 불행한 것이 된다. 물리학과 가장 비슷한 기준을 지니고 있는 가장 발전된 사회과학인 인구학이 비참한 예측 성적을 기록했다. 인구학적 예견자나 경제학적 예견자들은 변수를 실제 수량으로 다시 표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론적 분석과 전문 영역을 벗어나 과거나 현재의 광범위한 총체사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역사가처럼)
그러나 다른 사회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들도 미래와 맞닥뜨렸을 때엔 아주 무기력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은 자신이 탐구하고 있는 체계나 총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총체의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들과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인간 사회의 경험에 대해 비할 데 없이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학 분야에서 역사적 변화, 상호 작용, 변형의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들뿐이다.
역사가는 내년이나 다음 세기 BBC 국제 뉴스 속보의 머리기사를 쓸 수 있거나 쓰도록 노력해야 하는 예언자가 아니다. 다른 인간들처럼 역사가도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자격,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자격, 역사가 이전에도 가끔 그랬던 것처럼 잘 진행되는 것을 발견한다면 격려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발견하는 직업상 역사가의 임무는 우리가 미래의 결과를 좋아하는 지 여부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97p 중반, 마르크스의 예)
역사가들은 ① 인간이 미래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발견하는 일, ② 인간 행위의 배경과 결과적으로 인간 행위의 한계, 잠재력, 결과 등을 확증하는 일, 그리고 ③ 예측할 수 있는 일과 예측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측들의 차이를 구분하는 일 등 미래 탐험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많다. 역사가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생각할 수 있는 대안으로 만들어내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를 비판할 수 있고 비판해야만 한다. 역사가가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개선한다면, 그리고 조금 더 많이 능력을 알린다면, 사람들은 역사가의 말을 조금 더 들으려고 할 것이다. 역사가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보여줄 수 있다.
- 역사를 사문화되거나 글자로 되어 있어 써먹는 걸로만 생각하는데, 상당히 역동적이라는 것.
- 역사를 대상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지양하자고 말하는 것. 역사를 단절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하여 인간들의 개입을 강조하자는 것. 과거를 통해서 인간들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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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에는 조개구이에 소주 한 잔이면 최고죠.. ㅎㅎ
HoOHoO 님도 을왕리에서 즐거운 추억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세담님이야 말로 진정한 산꾼이십니다.ㅎㅎ 멋진 사진들 산행 모습들 보고 갑니다. 부러워 하면서요~~~
다음엔 저도 멋지게 산행해야 할것 같습니다. 더위와 맞선 건강한 산행 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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