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8 13:40 |

모든 역사는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현대사라고 이야기되어 왔다.

자신의 시대의 역사를 쓰는 것에 대한 문제와 가능성이 이 장의 주제이다.

첫 번째는 역사가 자신의 출생 시기,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세대 문제이다. 1917년에 태어난 홉스봄이 단기 20세기[각주:1]의 역사를 쓰기에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역사를 쓰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생애’라는 용어 자체는 논점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한 개인의 삶의 경험은 또한 집단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우리 생애에서 세계사나 민족사의 획기적인 사건을 인식한다고 해도, 그것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 사건들이 획기적인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것을 획기적인 사건으로 보는 합의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가는 자신만의 인생 경험을 지닌다. 이것은 개인의 횃대와 같아서 역사가는 거기에 걸터앉아 세계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시대에 대해 쓰려고 할 때엔, 이러한 시대 경험이 불가피하게 우리가 현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관점과 관계없이 호소해야만 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증거를 평가하는 방식까지도 형성해 준다. 같은 연배와 배경을 지닌 역사들의 경우에도 차이가 있지만, 섹대 간의 차이는 사람들을 깊숙이 갈라놓을 정도로 충분히 크다.

1940~41년에 영국의 상황에서 유화주의자들은 틀렸고, 처칠은 히틀러와 타협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에서만 옳았다. 대연합이 형성된 것은 항쟁주의자들이 유화주의자들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히틀러의 독일과 타협적 강화[각주:2]를 체결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940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젊은 역사가가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려면 상상력을 발휘하려는 노력, 즉 자신의 삶에 근거한 신념을 잠시 중단하려는 의지와 많은 열성적인 연구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나는 젊은 역사가에 맞서 20세기 나이 든 역사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이 든 역사가들은 몇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20세기의 역사에 대해 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있어 특별한 노력 없이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변해 왔는지를 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장점이다. 예전에 어떠했는지를 본 적이 없는 세대가 지난 30~40년 동안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그렇게 근본적으로, 극적으로, 놀랍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과거를 회상할 정도로 충분히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젊은 역사가들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알 수 있을 때, 나이 든 사람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 ‘과거는 다른 나라이다. 거기서는 일들이 다른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 모두에 대한 우리 판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역사적 이해의 출발이 과거의 다름에 대한 이해이고 역사가의 가장 큰 죄가 시대착오라고 한다면, 우리 나이 든 역사가들은 우리 수많은 단점을 상쇄하는 든든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게 된다.

 

두 번째는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관점이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역사가의 나이나 역사가의 관점이 그 시대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지나면서 나이에 관계없이 역사가의 시각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룰 것이다. 소련의 경제를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1961년의 경제학자보다 우리가 소련의 경제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시간의 경과로 인해 역사가의 궁극적인 무기, 즉 통찰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요점은 심지어 기록된 과거조차 뒤이어 진행되는 역사에 비추어 보면 변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대의 가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것은 모든 세대의 역사가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불행하게도 역사적 사건에 비추어 보면 재해석이 그리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역사적 합의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 시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의 전반적인 패턴, 즉 우리가 관찰할 때 주어지는 그 패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종교 전쟁의 세기를 살았고, 이것은 역사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종교 전쟁의 위험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세계를 제로섬 게임의 관점에서, 즉 병존할 수 없는 양분된 세계로 계속 보려는 데에 있다. 70여 년에 걸친 세계적 규모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세계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경제로, 즉 국가 주도의 경제와 개인에 기초한 경제로 나누고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거의 제2의 천성으로 만들었다.

 

 

 

  1. 홉스봄은 20세기를 1914년~1991년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단기(短期)”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2. 싸우던 두 편이 싸움을 그치고 평화로운 상태가 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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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13:38 |

지구 위의 대륙 각 부분들에 대해 인간이 붙인 이름에 불과한 지도첩 속의 대륙 형태이기에, 더욱이 이러한 대륙의 이름들에는 단순한 지리적 의미 이상의 의도가 들어 있으므로, 대륙이 대륙으로서의 역사를 지닐 수 있다는 혼동에 빠지면 안된다.

아시아를 생각해보면, 실제로 이 집단들은 공통점이 없다. ‘아시아적’이란 분류를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과거에 ‘동방(East)'이나 ’오리엔트(Orient)'로 알려졌던 지역에서 기원하는 일부 인류에 대한 아메리카인들의 태도나 더 일반적으로는 서구인의 태도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이것의 서양의 관찰자들과 이후의 정복자, 통치자, 이주자, 기업가들이 자신들에게 확실히 맞설 수 없었지만,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거나 또는 최소한 18세기와 19세기의 기준에 따랐을 때 진지하게 고려될 가치가 있는 확립된 고대 문화나 정치체에 분명히 속했던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찾은 것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적’이란 용어는 오늘날 이차적이고 지리적으로 더 제한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아시아 전체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제한된 공자(孔子)의 유산이 경제에 미친 영향에 관심을 가진다. 자본주의의 엔진에 연료를 채웠던 것이 이전에는 프로테스탄티즘이었다면, 오늘날은 공자가 대신한다.

유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동쪽 경계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러므로 유럽 대륙은 오로지 지적인 구성물로만 존재한다. 물론 유럽이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이 과거에 유럽이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대 그리스인이 이름을 붙인 이후로, 유럽은 항상 존재했다. 단지 유럽은 그렇게 탄력성 있는 개념은 아니지만, 바꾸기 쉽고 나뉠 수 있는 유연한 개념이다. ‘유럽’이라는 개념의 탄력성은 지리적이라기보단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다.

최초의 유럽 개념은 두 가지 대립에 근거했다. 하나는 페르시아 전쟁 시 페르시아 제국(B.C 500년경)의 진출의 대항하는 그리스인의 군사적 방어였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남부의 대초원 지대 위에서의 그리스 ‘문명’과 스키타이 ‘야만인’들과의 만남이었다. 이것을 대립과 차별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상호 공생과 융합으로 해석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전 고대 시기 지중해 문명 전체를 혼합 문명으로 보는 것도 논리적일 것이다.

‘유럽 이념’의 핵심을 형성했던 이데올로기, 즉 지리적 유럽 대륙의 일부를 배제하는 유럽개념은 샤를마뉴(Charlemangne)[각주:1]라는 상징에 호소했다. 그러나 사실상 그 시기에는 고전적으로 교육받은 소수의 성직자 집단 외에는 아무도 ‘유럽’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다. 사라센인들과 야만인들에 대한 서양 최초의 진정한 반격은 카롤링거 왕조 찬양자들이 붙인 ‘유럽 왕국’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로마) 기독교의 이름으로 수행되었다.(십자군 이데올로기) 유럽인들은 17세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을 신앙인으로 인식했을 뿐 유럽인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17세기 말 유럽인들의 경제적, 군사적 우위는 집단적인 인간의 전형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강화시켰다. ‘유럽’은 천 년 동안 수세에 놓여 있었지만, 그 후 500년 동안 세계를 정복했다.

최근 50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유럽 대륙에 대한 그러한 재정의는 역사가 아니라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속했음을 배워야만 했다. ‘유럽’은 소련이 통제하는 지역의 국경선에 멈추었고, 유럽 정부들의 비공산주의, 또는 반공산주의에 의해 유럽이 규정되었다. 또한 긍정적인 내용을 부여하기 위해 이를테면 유럽을 민주주의와 자유의 영역으로 묘사하는 것 같은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0년데 중반에야 남부 유럽의 명백한 권위주의 국가들이 사라졌고, 분명히 민주주의적이기는 하지만 ‘유럽적’인 것으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영국도 마침내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했다. 따라서 오늘날 유럽에 대한 정치 강령식의 정의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유럽‘을 하나로 결합시켰던 존재인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단일한 유럽이 존재했던 적은 결코 없었다. 이데올로기가 ‘유럽’에 지리적 의상이 아니라 종교적 의상을 입히려 했을 때조차도, 차이점은 항상 존재해 왔다.

유럽을 대륙이 아니라 클럽으로, 즉 클럽의 위원회가 적합하다고 공인한 후보자만 받아들이는 클럽으로 간주하는 전통은 거의 ‘유럽’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지리적 구분은 진정한 구분이 아니다. 그렇다고 꼭 이데올로기적인 구분이 진정한 구분인 것도 아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된 경계선은 부자와 빈자 사이, 다시 말해 사치와 교육과 외부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가장 분명한 이 같은 분리가 가로지른 것은 사회와 사회 사이가 아니라 주로 도시와 농촌 사이였다.

이븐 할둔은 역사를 초원의 유목민과 정착 문명 사이의 영원한 투쟁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투쟁에서 유목민은 때때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승리자가 아니라 계속 도전자로 남았다. 마르크스를 포함한 서양 철학자들의 잘못된 신념, 즉 역사발전의 동력은 오로지 유럽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신념은, 다른 문명의 지적이고 도시적인 문화의 연속성과는 달리 서양사의 불연속성에서 부분적으로 기인한다. 그러나 15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세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유럽 중심적으로 되었기에 오로지 부분적으로만 그렇다. 지구 전체를 포괄하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로서의 ‘세계’라는 개념조차도 유럽의 서반구 정복과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 체제의 출현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것이 유럽의 상황을 세계사 안에 고정시키고, 유럽사의 문제를 규정하고, 그리고 유럽이라는 특수한 역사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유럽사를 매우 독특하게 만든다. 유럽사의 주제는 지리적 공간이나 인간 집단들이 아니라 과정이다. 유럽이 자신을 변환시키지 못하고, 세계를 변환시키지 못했다면, 단일하고 통일적인 유럽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유럽으로 의식하는 그리고 유럽이라는 지리적 대륙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유럽’은 오로지 근대에 이르러서야 출현하였다. 그러므로 17세기의 어느 시기인가부터 새롭고 자의식적인 ‘유럽’이 세 가지 형태로 출현했다. 첫 번째 형태의 ‘유럽’은 “국가 이성”이 규정하는 영원한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된 국제적 국가체제로 출현했다. 두 번째 형태의 ‘유럽’은 지적 활동, 과학 그리고 학문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근대 학문을 건설하는 데 참여한 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공동체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은 유럽을 삼켜버렸다. 세 번째 형태의 ‘유럽’은 특히 19세기 동안 주로 교육, 문화, 이데올로기의 도시적 모델로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유럽사의 주요 특징이 아니라 부차적인 특징들이다. 역사적으로 동질적인 유럽은 존재한 적이 없으며, 동질적인 유럽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럽’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든지 간에, 유럽의 다양성, 즉 유럽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발전과 몰락, 공존, 변증법적 상호 작용은 유럽의 존립에 근본적인 것들이다. 자본주의와 근대 사회가 어떻게 그리고 왜 유럽에서만 완전히 발전했는가를 묻는 것은 유럽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을 묻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유럽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유럽 문화를 다른 것들과 질적으로 다르게 만들고 따라서 더 우월하게 만드는 특수한 요소들을 찾으려는 옛 습관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체스라는 동양 게임의 세계 챔피언들이 모두 서양 사람들이어서 우월해보였지만, 이제 서양인은 더 이상 우월하지 않다. 둘째, 유럽에서 자본주의를, 과학과 기술의 혁명을, 그리고 그 밖의 나머지를 야기했던 작업 방식에는 특별히 ‘유럽적인’ 것 또는 ‘서양적인’ 것이 전혀 없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셋째, 우리는 이제 시간상의 전후 관계를 인과 관계와 혼동하려는 유혹을 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사는 여전히 독특하다. 마르크스가 관찰했던 것처럼, 인류의 역사는 우리가 그 안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자연에 대한 통제를 발전시켜 온 역사이다. 이러한 역사를 곡선으로 그려본다면, 첫 번째 상승 곡선은 “신석기 혁명”일 것이다. 이것은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정도로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 같다. 두 번째 상승 곡선은 근대 과학, 기술, 경제를 초래했던 혁명이었다. 이것은 오로지 유럽에서만 일어나서 몇 세기만에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소수의 유럽 국가들을 지구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1. 카롤링거 왕조의 제2대 프랑크 국왕(재위 768~814). 몇 차례의 원정으로 영토 정복의 업적을 이루고 서유럽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했다. 중앙집권적 지배를 가능하게 하면서 지방봉건제도를 활용했고 로마 교황권과 결탁하여 서유럽의 종교적인 통일을 이룩하고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이룩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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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14:02 |

이 글은 ‘사회 경향’을 다루는 것인데, 사회 경향은 넓은 의미에서 ① 사회 발전 방향에 대한 탐구 ② 우리가 사회 발전 방향과 관련하여 할 수 있을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은 위험하고 자주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또한 필요한 행동이기도 하다. 현실 세계에 대한 모든 예견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 즉 역사에 근거해서 미래를 추측하는 일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한다. 그러므로 역사가들은 자신의 분야인 역사에 관해 적절한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역사에 근거해서 미래를 추측하는 것과는) 반대로, 역사는 미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경계선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딘가에 “현재”라 고 부를 수 있는, 개념상으로는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점이 존재한다. 우리들은 역사가의 지혜를 이용하여, 현재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 속에서 간접적인 대답을 찾으려 하지만, 과거에서 모든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어쨌든 과거, 현재, 미래는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아무리 과거와 미래를 엄격하게 구분하려 하더라도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과 사회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들의 위치를 과거와 관련하여 규정한다. 더욱이 학습, 기억, 경험에 기초한 대다수의 의식적 인간 행위가 과거, 현재, 미래와 끊임없이 직면하는 방대한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사람들은 몇 가지 형태로 과거를 해석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공공정책은 물론이고 의식적인 인간 생활의 일상과정도 그러한 예측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예측은 대체로 미래가 과거와 체계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정당화된 가정하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과거도 환경과 사건을 멋대로 연결한 것은 아니다.(나름 체계적이라는 의미?) 인간 사회의 구조, 그 진행 과정과 재생산, 변화, 변형의 메커니즘 등은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제약하고, 일어날 몇몇 일들을 결정하고, 나머지 대부분에 얼마간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특정한 (명백하게 제한된) 범주의 예측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성공적인 예보와 결코 똑같지 않다. 더구나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측에 대한 논의들은 불확실성이 가장 큰 미래 부분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계절의 순환처럼 불확실성이 거의 없는 미래 부분에 집중되지 않는다.

미래를 상당한 정도까지 예견하는 일이 바람직하고, 가능하고, 심지어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것은 미래가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심지어 결정되었다 할지라도) 알기 쉽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대안적 선택이나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도 않고, 예측자가 옳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예측은 어느 정도나 가능한가? 어떤 종류의 예측이 가능한가? 예측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나? 그리고 역사가들이 이 예측과 일치하는 것은 어디인가?

- 예측을 개선한다는 말에는 예측이 수정가능하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음.

그 전에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① 왜 예측 기능은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가 없는가? ② 왜 예측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천적이라고 확신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마저도 예측 기능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거나 그와 관련된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는가? 답은 명확한데, 거의 모든 역사적 예측이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전문 역사가들은 예측을 회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일이다.

인간적 예측과 기상학적 예측은 모두 신뢰할 수 없고 불확실한 기획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한편 기상학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기후를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러한 기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을 행동 목표로 삼는다. 개개 인간들은 아마도 비교적 드물기는 하지만,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역사적) 예보를 이용한다. 역사적 예견을 이용하여 인간들이 내리는 어떤 결정들은 크든 작든 명확하게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가 전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이러한 기대는 집단적인 인간들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지식을 알기 위해 역사적 예견에 의존하려는 기대) 문제는 (예견이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예견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역사는 단절적이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함.

- 4장에서는 미래를 위해서 사람들(역사가들)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룸.

- 한 사람이 역사에 대해서 예측을 할 때에는 기상학과 마찬가지로 예보를 사용한다. 그러나 집단적 예견의 경우에는 달라질 수 있다. 어쨌건 그러한 예측과 인간들의 행동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역사적 예견이 전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 예견이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평이 수반된다. 그래서 역사적 예견은 기상 예측과 다르다. 또한 역사가들에게는 일기 예보처럼 정기적으로 그리고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확실한 고객층이 없다는 점에서 불리하다. 더구나 실질적으로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하는 데 주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특히 정치판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역사가들)를 둘러싸고 있다.

예언가들도 욕을 먹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불가피성을 논증하는 역사적 분석을 발전시키기 전에, 다시 말해 확실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해 아주 많이 알기 전에, 인간 역사의 특정한 목표인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특수한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에 내재된 법칙”을 통한 개개 자본가들의 착취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측(분석에 기초한 예측)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착취자를 착취하는” 계급이 될 것이라는 예측(열망에 근거한 예측)과는 다르면서 더 중요한 역사적-이론적 분석에 근거한다.

우리 모두(역사가들)는 이러한 심리적 유혹, 또는 이데올로기적 유혹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혹을 피할 수 없고, 중립적이지 않았다. 이것은 순전한 무지와 함께, 역사 예측자들의 길을 막는 주요한 장애물이다.

- 그렇다면 역사적-이론적 분석에 근거한 역사적 예측은 자연과학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역사적 예측은 두 가지 방식에서 다른 모든 예측 형태와 다르다. ① 역사가들은 다른 것들과 절대 똑같을 수 없거나 무시될 수 없는 실제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역사가들은 명백하게 복잡하고 변화하는 종합적 총체와 관련되어 있고, 역사가들의 아주 구체적이고 좁게 규정된 질문들조차 이러한 맥락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② 이론가로서 역사가들은 예견을 확증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역사가들의 예언 대부분은 검증될 수 없다. 또한 “검증될 수 있는 예측 명제로 반드시 정식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 분석의 범주를 위축시키고 본질적으로 시간 경과 속의 복잡한 변화를 연구해야 하는 역사학을 왜곡한다.

- 그렇다면 검증되지도 않고, 총체적으로만 파악하는 예견인데, 정말 역사적 예견을 하는 건가? 라는 질문에 회고적 예견을 한다고 대답함.

역사가는 회고적으로는 늘 예견을 한다. 역사가들이 예견한 미래는 현재가 되거나 더 먼 과거에 비해 더 가까운 과거가 된다. 이러한 역사가들의 방법은 ① 역사가의 예견은 회고적이기는 해도, 복잡하고 포괄적인 인간 생활의 실제, 결코 똑같지 않은 다른 것들, 그리고 실제로는 ‘다른 것들’이 아니라 사회 속의 인간 생활에 대한 서술로 완전히 추상화될 수 없는 관계들의 체계에 관한 것이다. ② 모든 역사 분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 속의 상호 작용 패턴, 변화와 전환의 경향과 메커니즘, 사회 내의 변화 방향 등을 정확하게 발견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역사가들의 노력은 ‘거의 중요하지 않은 이론 범주로 경험적 자료들을 편집하여 과거를 통계적으로 그려보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 회고적 예견 : 예견이라는 것이 미래를 내다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과정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예측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과거에서 현재를 예측한다고 생각을 하면 되는 것임.

- 모든 역사가들은 회고적 예견을 하는 것이고, 어떤 역사가들은 미래를 어느 정도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 역사가가 예견하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어떠한 구조 속에서 변화되어 왔을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다는 것.

역사를 이용한 예측은 두 가지 방법을 일반적으로 조합해서 사용한다. 하나는 일반화나 모델화를 이용해서 경향을 예측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경로 분석에 의해 실제 사건이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영국 경제의 지속적 하락에 대한 예측은 첫 번째 방법의 예이고, 대처 정부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두 번째 방법의 예이다. 러시아 혁명이나 이란 혁명 같은 어떤 것을 예언하는 것은 이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하는 것이다.

- 1번이 내재적 규칙을 찾거나 공식을 만드는 것이라면 2번은 인과관계를 만드는 것.

- 1번이 통합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정치나 기타 다른 것도 고민)이라면 2번은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보기에 어떠한 사건이나 행동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 본다는 것.

- 결론은 그래서 2가지 모두를 고민해야 역사적 예측을 쉽게 할 수 있음.

- 회고적 역사는 반(反)사실적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공식화된 반(反)사실적 사고, 즉 ‘계량사학자’들의 반(反)사실적 사고와는 구별되어야만 한다.(반사실적 역사는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역사이다.)

간단하게나마 러시아 혁명을 검토해 보는 것은 역사의 진행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예측의 범위와 그 한계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검토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 역사상 1917년과 같이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진행 과정에 대한 상대적 분석을 통하여 예측력을 지니고 있었던 지점과 명령이나 계획을 행사함으로써 문제가 야기되는 지점 사이를 구별할 수 있다.

-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때, 그 메커니즘을 살펴보아야 하지, 겉에 드러나는 그 조건들에 대해서만 살펴보아서는 안된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혁명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발생했는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함.

어떤 면에선 사회적 경향을 예측하는 것이 사건을 예측하는 것보다 쉽다. 사회적 경향을 예측하는 것은 모든 사회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발견 자체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기 예측의 잘 알려진 결점은 그 예측이 언제 실현될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문제와 ‘언제 일어날 것인가’라는 문제는 방법론적으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연대기를 제쳐두면, 역사가는 사실상 사회과학에서 가장 강력하고 일반적인 예측에 필수적인 존재로 인정된다. 이러한 예측은 그 어떤 종류의 실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론 명제나 이론 모델에 근거한다. 이러한 예측은 값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인 동시에 불충분한 것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변수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확립할 수만 있다면 논증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예측은 그 자체가 너무 일반적이어서 구체적 상황을 많이 설명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불충분하고, 그러므로 그러한 예측을 이용하여 미래를 직접 미리 보려는 시도는 불행한 것이 된다. 물리학과 가장 비슷한 기준을 지니고 있는 가장 발전된 사회과학인 인구학이 비참한 예측 성적을 기록했다. 인구학적 예견자나 경제학적 예견자들은 변수를 실제 수량으로 다시 표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론적 분석과 전문 영역을 벗어나 과거나 현재의 광범위한 총체사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역사가처럼)

그러나 다른 사회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들도 미래와 맞닥뜨렸을 때엔 아주 무기력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은 자신이 탐구하고 있는 체계나 총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총체의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들과 인류학자들은 다양한 인간 사회의 경험에 대해 비할 데 없이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학 분야에서 역사적 변화, 상호 작용, 변형의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들뿐이다.

역사가는 내년이나 다음 세기 BBC 국제 뉴스 속보의 머리기사를 쓸 수 있거나 쓰도록 노력해야 하는 예언자가 아니다. 다른 인간들처럼 역사가도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자격,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자격, 역사가 이전에도 가끔 그랬던 것처럼 잘 진행되는 것을 발견한다면 격려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발견하는 직업상 역사가의 임무는 우리가 미래의 결과를 좋아하는 지 여부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97p 중반, 마르크스의 예)

역사가들은 ① 인간이 미래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발견하는 일, ② 인간 행위의 배경과 결과적으로 인간 행위의 한계, 잠재력, 결과 등을 확증하는 일, 그리고 ③ 예측할 수 있는 일과 예측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측들의 차이를 구분하는 일 등 미래 탐험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많다. 역사가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생각할 수 있는 대안으로 만들어내려는 매우 위험한 시도를 비판할 수 있고 비판해야만 한다. 역사가가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개선한다면, 그리고 조금 더 많이 능력을 알린다면, 사람들은 역사가의 말을 조금 더 들으려고 할 것이다. 역사가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보여줄 수 있다.

- 역사를 사문화되거나 글자로 되어 있어 써먹는 걸로만 생각하는데, 상당히 역동적이라는 것.

- 역사를 대상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지양하자고 말하는 것. 역사를 단절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 진행형으로 생각하여 인간들의 개입을 강조하자는 것. 과거를 통해서 인간들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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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19:57 |
몇 몇 사람들과 모여서 이른바 '인문학'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고 있다.
사실 공부라고 하기에는 미흡하고, 그냥 같이 책읽고 수다떠는 정도. 라고 표현하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려나? ^^;
어쨌건 "집단학습"이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더 어울릴만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커리큘럼도 정해져 있는 것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계획은 없다. 다만, 철학, 역사, 경제 등에 대해서 같이 알아보자는 취지이다.
지금까지, 철학 vs 철학」,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보았고, 이제는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을 볼 차례이다. 앞에서 읽었던 책들보다는 좀 더 어렵기도 하고, 딱딱한 책이기에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우선 이번에 봤던 부분은 "서문"과, "1장 역사의 밖과 안에서"이다.
서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책들과 같이, 이 책에 담겨져 있는 대충의 내용과 강조할 지점인 듯하다.
특히, 역사가가 실재를 탐구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옹호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물론, 아직 1장까지 밖에 읽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단순히 증거에 근거한 역사적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을 구분해 내는 것을 강조하는 점은 뭔가 단순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른바 신화라고 불리는 부분에 대한 강한 거부감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 싶었다.
 

1장은 중앙·동유럽 국가의 학생들을 위해 강연했던 내용이다. 이른바 구소련의 영향을 받았던, 관계있었던 나라들의 학생들이 대상이었던 것.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책에 의하면 매우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 있는 나라를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 인종주의,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기 쉬우며, 특히 역사는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도와주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고. 그래서 역사가의 책임을 강하게 이야기한다. 여기서 예로 들었던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마음 속 깊이 남는다. 이른바 일제강점기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를 강조하면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한국의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생각. 물론 일본이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말 것. 더구나 아직도 인종주의를 내세우며(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쨌든 간만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마주하니, 앞으로의 책읽기가 기대된다.

0. 책머리에

역사학에 대한 일반적인 성찰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세 가지 주제

- 역사의 사회적, 정치적 사용과 악용,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와 (가능하다면) 세계의 재구성에 대한 관심. 특히 역사학이 사회과학 내에서 갖는 가치에 대해 논의.

- 과거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역사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 진지한 역사가라면 누구나 직면 할 수밖에 없는 중심적인 문제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유용했던 역사적 해석, 그리고 또한 내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 배경, 신념, 삶의 체험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기술했던 방식들에 관한 것.


두 주제에 대한 해명

- 역사가가 실재를 탐구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옹호한다. 역사가는 확정된 사실과 꾸민 이야기 사이를, 증거를 필요로 하고 증거에 근거한 역사적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 사이를 근본적으로, 아주 중점적으로 구분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객관적 실재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견해가 최근 몇 십 년 동안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의심하면 실증주의라고 비판받음.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를 구별하지 않으면 역사가 존립할 수 없다고 확신. 상대주의는 법정에서 쓸모가 없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쓸모가 없다.

-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접근 방식을 다루려고 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이 역사에 대한 단연 최상의 (하지만 조건부의) 안내자라는 것을 계속 깨닫게 된다.

  “역사는 사회가 본질적으로 겪는 모든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 이븐 할둔

  일관성 있는 지적 연구인 역사학은 세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었다. 누구의 저작도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붙인 정치적 레테르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1. 역사의 밖과 안에서

중앙유럽과 동유럽에 관한 것

- 중앙유럽과 동유럽은 전쟁을 거치면서 침략당했고, 정복당했고, 점령당했고, 해방되었고, 다시 점령당했기에 매우 불확실한 상태에 놓인 나라들이다. 중앙유럽인과 동유럽인이 어디에 속하고,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어떤 나라에서 그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고, 그 밖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법적 지위와 삶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결정짓기도 하는 문제이다.

- 더 집단적인 성격의 또 따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중앙․동유럽의 어느 나라나 어느 지역도 스스로를 유럽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세기 중앙유럽과 동유럽의 이야기는 대체로 몇몇 모델을 차례로 모방하여 따라잡으려다 실패했던 이야기이다. 1918년 이후 새롭게 등장했던 대부분의 후계 국가들이 모델로 삼은 것은 서유럽의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였다. 1930년대에는 파시즘 모델을 시도하거나 이 모델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1945년 이후에는 볼셰비키 모델을 선택했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볼셰비키 모델은 후진적 농업 경제를 계획적 산업 혁명을 통해 현대화하려는 모델이었다. 이 체제는 1989년에서 1991년 사이에 아주 극적으로 무너지고, 지금은 의회 민주주의 정치와 극단적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 경제를 뒤쫓으려 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중앙․동유럽 국민들은 실망스러운 과거를 지닌, 아마 더 실망스러운 현재를 지닌,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지닌 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와 불안정을 탓할 누군가를 찾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민족주의나 관용을 베풀지 않는 움직임일 것 같다.


역사가의 책임

- 역사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나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 또는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있어 본질적인 구성 요소, 아마 가장 본질적인 구성 요소이다. 과거는 현재를 정당화시킨다. 과거는 별로 기념할 가치가 없는 현재를 영광스럽게 만드는 배경을 제공한다. 역사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정치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일반적으로 역사가들은 역사적 사실에 책임을 져야하며, 특히 역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일을 비판해야 한다. ① 소설 줄거리를 기록된 실제에 기초해서 구성하는 최근 경향에 따라(팩션)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허구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있다. ② ‘포스트모던적’ 지적 경향이 서구의 대학에서, 특히 문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강해진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실과 허구 사이에 명확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역사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기억이나 집단적 전통이 아니라. 역사는 사람들이 성직자, 교사, 역사 집필자, 잡지 편집자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배운 것이다. 역사가가 자신의 책임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역사가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격정에서 비켜서 있어야 한다. 역사가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격정을 느낀다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한 민족 신화, 인종 신화, 그리고 다른 신화들의 형성에 저항해야만 한다.


역사가로서 마지막 당부

- 정부, 경제, 학교 등 사회의 모든 것은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돌볼 수 있다. 사회 내의 모든 것은 특별히 영리하거나 흥미롭지 않은,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성공하지 못하거나 성공하도록 운명지어지지 않은, 즉 실제로 결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세계는 우리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져 있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세계 속에 있지도 않다. 개인적 이익의 추구가 자신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가 아니고 계속 유지되어서도 안 될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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